내가 움직일 수 있는 손이 중요하다. 종이나 연필 등은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마음 또한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고, 즉 이야기를 하거나 그 이야기를 보조할 대본을 준비한다고 생각한다. 또는 내가 앉아 있는 의자나 어젯밤 꿈나라로 떠나기 전에 깨문 체리 몇 알을 떠올린다. 궁극적으로는 무엇보다 나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는…
시작. 일단 iA 라이터를 실행한다. 쓰고 싶은, 또는 써야 할 주제를 생각하며 떠오르는 대로 나열한다. 위에서 아래로. 즉, 순서가 중요하지 않은, 또는 순서가 없는 목록을 만드는 셈이다. 각 항목은 단어이기도, 구절이기도, 문장이기도 하다. 이때 제대로 된 문단이 만들어지는 법은 없다. 나열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 보인다. 즉, 하이퍼링크다. 손 또한 움직이는 동시에 생각한다. 물론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그럴듯한 문단이 완성됐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시간 부족의 결과물이다.
위에서 아래로 나열된 항목들을 연결하며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다. 이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단어였던 항목을 구절로, 구절이었던 항목을 문장으로. 문장이었던 항목을 다시 단어로. 너무 빠르지 않게. 지나치게 시간을 들이는 것 또한 곤란하다.
목록과 항목 사이에서 내 목소리가 들린다. 질문이 피어오른다.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까? 형식에 관해 고려할 차례다. 천천히 또는 빠르게? 크게 또는 작게? 얌전하게 또는 짓궂게? 수많은 변수 가운데 적절한 몇 가지를 상수로 설정한다. 적절함을 판단할 수 있는 건 경험에서 비롯한 취향이다. 처음에는 조금 삐그덕거리지만 이제 ‘무엇을’, 즉 내용과 ‘어떻게’, 즉 형식이 이내 어우러지기 시작한다. 언젠가 하일지 선생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어떻게’ 쓸지 결정하면 자연스럽게 ‘무엇을’ 쓸지가 정해집니다. (…) 한 문장을 씁니다. 그리고 다음 문장을. 그리고 그다음 문장을. 반복하다 보면 작품이 완성됩니다.” 그처럼 ‘어떻게’를 먼저 결정하는 사람이 있다지만 ‘무엇을’부터 결정하는 게 여러모로 자연스럽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천재성이 아닌 그가 같은 일을 계속, 끝까지 반복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항목 속 또 다른 항목들이 한 줄을 만들고, 마침표가 붙을 때까지 끊어지지 않고 다음 줄로 이어지면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한다. 내게 기댄 공간을 채워야 하는 부담감이 사라지는 것이다. 4분의 2박자, 또는 4분의 3박자, 또는 4분의 4박자. 움직이고 생각하는 손에, 나아가 일에 리듬이 생기면 리듬을 따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공간이 빡빡하게 채워서 무화시킬 대상이 아니라 다시 드러내야 할 대상임을 알게 된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는…
이제 글은 iA 라이터를 떠나 서브라임 텍스트에 자리한다. 각 요소에서 헤더, 메인, 푸터를 설정한다. 즉, 콘텐츠를 가장 중요한 것, 중요한 것, 덜 중요한 것으로 나눈다. 나머지는 일단 생각하지 않거나 나중에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