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4일은 어떤 사람에게 무척이나 뜻깊은 날이었다. 미국인 대부분에게는 240번째 독립 기념일이라는 점에서, 핫도그 마니아에게는 핫도그 체인점 네이선 페이머스(Nathan’s Famous)가 문을 연 지 100주년을 기념하는 ‘핫도그 먹기 대회’(Hot Dog Eating Contest)가 열린 날이라는 점에서. 이날은 내게도 얼마간 뜻깊었다. 오랜만에 학생으로 잠시 뉴욕에 머물던 나는 웹툰 오무라이스 잼잼으로 널리 알려진 조경규 형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 대회에 참관했다. 참관이라 해봤자 메트로카드를 충전하고, 대회가 열리는 코니 아일랜드전동차에 올라탄 게 고작이었지만.

브루클린 남쪽 끝에 있는 코니 아일랜드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본디 대서양에 저리한 섬이었다. 1800년대까지만 해도 부유층을 위한 곳이었지만, 1900년대 초 철도가 놓이고 호텔, 놀이기구 등이 들어서면서 뉴욕의 대표적 피서지 겸 유원지가 됐다. 여기에 스페인 갈리시아(Galicia) 지방 출신 네이선 한트베르커(Nathan Handwerker)가 터를 잡고 아내와 함께 핫도그 가게 네이선 페이머스의 문을 연 것도 그 무렵, 1916년이었다.

같은 해 독립 기념일, 네이선 페이머스 앞에서 열린 대회는 이민자 넷이 누가 더 이 나라를 사랑하는지 가릴 목적으로 시작됐다. 대규모 정치 시위 때문에 열리지 못한 1941년과 1971년을 제외하고, 100년 동안 이어진 대회의 규칙은 플레인 핫도그처럼 단순하고 명료하다. 즉, 단 10분 동안 핫도그를 가장 많이 먹는—위장에 쑤셔넣는다는 표현이 더 가깝겠지만—사람이 우승자가 되는 것. 그럴 시간이 있을까 싶지만, 핫도그에 겨자나 케첩 같은 소스를 뿌리는 건 자유고, 중간중간 음료도 종류에 상관없이 마실 수 있다. 그리고 우승자는 겨자색 챔피언 벨트와 함께 1만 달러(약 1,100만 원)를 받는다. 여기에 핫도그로 부풀 대로 부푼 위장은 덤.

대회장은 네이선 페이머스 본점 앞. 건물 한 쪽 벽 전체는 지난 대회의 우승자로 장식돼 있었고, 벽에 붙은 전광판은 대회 시작까지 남은 시간을 알렸다. 독립 기념일을 기리든, 핫도그 먹기 대회에 참관하든, 아니면 둘 다에 해당하든, 대회장 앞 도로는 저마다 추억을 만들기 위한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회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 목소리에 지역 악단의 요란한 연주, 사회자의 추임새는 물론이고,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음료수 회사 직원들의 고함까지 더해져 시끄러운 건 말할 것도 없었고. 사회자의 호명으로 도전자들이 차례차례 무대에 오르고, 내가 따라 부를 수 없는 미국 국가가 끝나자 비로소 대회가 시작됐다.

산뜻할 정도로 정확히 10분 뒤 끝난 이날 대회에서는 조이 체스트넛(Joey Chestnut)이 일흔 개, 미키 스도(Miki Sudo)가 38.5개를 먹어치워 남녀 부문에서 각각 우승자가 됐다. 핫도그 하나를 먹는 데 체스트넛은 약 9초, 스도는 약 16초가 걸린 셈. 대회가 남녀 부문으로 나뉜 2011년, 마흔 개를 시작으로, 2012년 마흔다섯 개, 2013년 36.75개를 먹어치우며 여성 부문에서 3연패를 기록한 이선경(미국 이름 소냐 토머스[Sonya Thomas], 별명 흑과부거미[Black Widow])은 스무 개에 그쳤다. 빅맥 하나 먹는 데 20분은 족히 걸리는 내게는 그마저 위대해 보일 따름이었다. 이 위대함에 관해 2001년부터 6년 동안 남성 부문에서 우승한 고바야시 다케루(小林尊)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바 있다.

우승을 위한 결정적 신체 기관은 위장이 아니라 두뇌죠.

즉, 먹고자 하는 믿음만 있다면 먹을 수 있다는 것.

이제는 보는 게 아니라 먹을 차례. 하지만 날이 날인 만큼 이날은 가게마다 핫도그를 먹으려는 사람으로 그득한 탓에 정작 중요한 핫도그는 제대로 구경도 하지 못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사람들 사이를 서성이다 조경규 형에게 선물할 대회 100주년 기념 티셔츠를 한 장 구입하고, 대서양에 잠깐 발을 담그고, 길고 딱딱한 물건으로 해변 백사장에 뭔가를 음각한 게 전부였다. 맨해튼전동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입맛을 다시며 핫도그의 모양과 맛을 상상했다. 내 맞은편에서는 요란한 그래픽이 찍힌 패딩 점퍼를 입은 흑인 청년이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불렀다. 내가 기독교 신자가 아닌 점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다시 코니 아일랜드를 찾은 건 한 달여 뒤,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였다. 팔뚝이 검정 털로 부얼부얼한 아저씨가 건네준 핫도그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핫도그의 모범’이라 할 만했다. 알맞게 구워져 빵 사이에 대충 끼워진 길쭉한 소시지는 늠름해 보이기까지 했고. 그 앞에서 고대 로마에서 처음 발명됐다는 핫도그의 기원을 하나하나 따져볼 필요는 없었다. 시시하다는 표정을 짓는 아내와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호에 따라 그 위에 양파와 겨자와 케첩을 천천히 얹는 일뿐. 맛은 한 달여 전 내가 상상한 것과 꼭 같았다. 대서양과 그 너머를 바라보며 아내와 함께 영화 난폭한 주말(Nothing But Trouble)에서 댄 애크로이드(Dan Aykroyd)가 연기한 J. P.처럼 핫도그를 씹어대는 동안 귓속에서는 한 달여 전 전동차에서 만난 흑인 청년의 노랫소리가 흘렀다.

한때 을 잃었으나 이제는 찾았고, 한때이 멀었지만 이젠 볼 수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