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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홍 매뉴팩처링

Min Guhong Manufacturing, Min Guhong Mfg. 2015년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회사 소개를 발표하며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내가 근근이 운영하는 회사. 내가 일하는 회사기생한다.

2019년 로럴 슐스트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사명, 즉 회사이름은 ‘민구홍’과 ‘매뉴팩처링’으로 구성된다. 전자는 다름 아닌 내 이름이다. 후자인 ‘매뉴팩처링’은 일반적으로 ‘원재료를 인력이나 기계력 등으로 가공해 제품대량생산하는 산업’을 뜻하지만, 야구에서는 ‘도루나 진루타, 희생타 등 안타가 아닌 방법으로 득점하는 기술’을 가리키기도 한다. 는 대부분의 에서 이름을 짓는 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편이다. ‘매뉴팩처링’이라는 단어가 품은 기능주의기회주의실천하려는 의지회사이름에 드러내고 싶었다. (…) 이야기하는 동안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다. 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쉽게 기뻐하고 쉽게 상처받기도 한다. 이는 내게 짐이 되곤 한다. 그런데 회사 뒤에 있으면, 생활을 분리해 이런 것에 어느 정도 무신경해질 수 있다. 공연 예술가 앤디 코프먼은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투영할 요량으로 토니 클리프턴창조해냈다. 위악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내게 앤디의 토니인 셈이다.”


1세대 넷 아티스트 J.R. 카펜터(J.R. Carpenter)가 ‘핸드메이드 웹’(Handmade Web)을 주창한 2015년, 민구홍은 생각에 잠겼다. 슬기와 민과 워크룸 이후 ‘소규모’라는 접두어를 붙인 스튜디오들이 등장하던 시절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민구홍의 마음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소설처럼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유년 시절부터 사랑해 마지않는 웹과 글쓰기의 힘에 기대 그들처럼 독립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본과 용기가 부족한 탓이었다. 게다가 어깨너머로 살펴본, 독립하는 순간 맞닥뜨리게 될 세금 관련 업무 또한 피하고 싶었다. 이는 부러움이나 질투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2015년은 UN이 지정한 ‘세계 빛의 해’이기도 한 만큼 그에게는 자신을 빛으로 인도할 세 번째 길이 필요했다.

당시 민구홍이 근무하던 안그라픽스에는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가기 위한 크리에이티브 집단”답게 소정 근로 시간 가운데 일부를 개인 작업에 할애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 홋카이도 대학을 설립한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William Smith Clark)의 조언까지 떠올린 그는 이 제도를 이용해 ‘소규모’가 아닌 ‘대규모’를 지향하는 회사를 설립하기로 마음먹었다. 단, 독립하지 않고 자신의 근무지에 기생하며 숙주에 노동력과 얼마간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대신 근무지의 동산(컴퓨터, 와이파이, 커피 머신 등)과 부동산(작업 공간)을 마음껏 이용하는. 그는 이 방식이라면 자본과 용기가 부족하더라도 문제가 없으리라, 나아가 회사를 취미 삼아, 즉 이윤 창출에 대한 고민 없이 순전히 자신의 행복을 위해 운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 결정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결정, 즉 회사명을 결정하는 일로 이어졌다. 일찍이 작품은 제목만으로도 완성될 수 있다고 믿어온 그에게 회사명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 석 자만 홀로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 부끄러움이 많은 만큼 회사명과 자신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특정 단어나 단어와 단어를 조합한 결과물에 의미를 부여한 회사명은 나중에 겸연쩍어질 가능성이 컸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의 이름 뒤에 ‘매뉴팩처링’이라는 다섯 글자를 붙이기로 마음먹었다. 그 순간 모든 고민이 해결된 듯 기분이 산뜻해졌다. 이 결정에는 평소 그가 ‘장영혜 중공업‘과 ‘안은미 컴퍼니’의 작품을 좋아하고, 신촌 기찻길에 자리한 ‘김진환 제과점’의 식빵을 즐겨 먹은 것도 한몫했을 터였다.

‘손을 통해 사용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물질을 변환하다.’라는 뜻의 동사 manufacture에서 유래한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은 일반적으로 ‘원재료를 인력이나 기계력 등으로 가공해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산업’을 뜻한다. 한편, 야구에서는 도루나 진루타, 희생타 등을 이용해 안타가 아닌 방법으로 어떻게든 득점하는 기술을 가리키기도 한다. 민구홍은 웹과 글쓰기를 이용한 결과물, 결국 자신의 손으로 만든 제품이 사용자의 웹 브라우저를 통해 스스로 대량 생산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렇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라는, 민구홍 자신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실용주의와 기회주의가 어우러진 회사명이 만들어졌다.

그 뒤 회사명의 한글 표기 원칙(‘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띄어쓰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쓰기하는 것을 허용한다.), 로마자 표기 원칙(‘Min Guhong Manufacturing’ can be abbreviated as ‘Min Guhong Mfg.’), 나아가 가나 표기 원칙(「ミン」と「クホン」と「マニュファクチャリング」の間には中黒[・]を入れる。), 아브자디야 아라비야 표기 원칙(يُكتَب ‘مينغو هونغ مانوفيكتورينغ’ من اليسار إلى اليمين.) 등을 하나씩 마련하던 즈음 민구홍은 전시 공간 시청각의 공동 운영자이자 이제는 하이브로 자리를 옮긴 안인용에게 ‘시청각 문서’의 열세 번째 지면을 제공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시청각 문서’는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의 생산자가 글을 기고하는 프로젝트였고, 열두 번째 문서는 SF 소설가 듀나(DJUNA)의 작품이었다.

회사를 설립하고, 회사명과 문자별 표기 원칙까지 마련했으니 이제는 회사를 소개할 차례였다. 민구홍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하지 않는 일을 서른일곱 가지로 정리했고, 같은 해 10월 16일, 작품의 목적을 고스란히 반영한 「회사 소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거리에 버려진 농구공의 궤적을 추적하지 않습니다. (…)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독립 출판물 전문 서점에 회계 자료 위조 지침을 유통하지 않습니다. (…)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상임 고문과 한국어 담당 교열자, 산업 스파이를 고용하지 않습니다. (…)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화장실에 선형대수학 참고서를 비치하지 않습니다.” 이는,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회사를 설립한 뒤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여기에는 회사라면 모름지기 하는 일보다 하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별 근거 없는 신념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그렇게 「회사 소개」와 함께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컨베이어벨트는 민구홍이 사랑해 마지않는 웹과 글쓰기의 힘을 동력 삼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뒤 공식 웹사이트와 이메일 주소를 만들고, 루나 엠버시(Lunar Embassy)를 통해 달에 1에이커(약 1,224평)에 달하는 부동산까지 구입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아트선재센터, 일민미술관, 아르코미술관, 구글, 배달의민족, thisisneverthat,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타이포잔치, 서울레코드페어, 박민희, 정서영, 돈선필, 김뉘연과 전용완, 이한범 등 국내외 여러 기관, 기업, 단체, 개인 등과 함께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고, 구글 폰트의 공식적인 친구가 되고, 두 차례 단독전을 열거나 크고 작은 단체전에 참여하고, 회사를 소개하는 『레인보 셔벗』을 출간하고, ‘동신사’, ‘전산 시스템’ 등 친구들을 위한 회사명을 만들고, 2016년부터 민구홍이 시작한 「새로운 질서」를 지원하고, 송예환을 비롯해 네덜란드, 일본 등에서 찾아온 인턴이 거쳐가고… 이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국면에 따라 이리저리 구부러졌다. 「회사 소개」에 회사에서 하는 일을 규정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단, 한 가지 꼿꼿한 바가 있다면 모든 일이 결국 「회사 소개」로, 즉 무엇을 해야 할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채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하는 일로 수렴한다는 점이었다.

그 사이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숙주는 안그라픽스(2011~6년)에서 워크룸(2016~22년)으로, 그리고 다시 안그라픽스(2022년~)로 바뀌었다. (한 번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회사로부터 기꺼이 숙주가 되고 싶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작업이 확장해 숙주로 이어지는 등 회사와 숙주의 관계는 기생을 넘어 서로 양분을 주고받는 공생이 됐다. 이를 통해 민구홍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특히 미술 및 디자인계에서 비즈니스의 또 다른 모델이 될 수 있음을 경험했다. 민구홍의 역할 또한 근무지에서는 기획자,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에서 디렉터로, 근무지 밖에서는 작가, 번역가, 홍익대학교 겸임 교수,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부회장, VJ 등으로 바뀌었다. 이 또한 어느 정도는 민구홍 매뉴팩처링 덕일 테다. 즉, 민구홍에게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어떻게 일하고, 나아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한 가지 답이었다. 미디어버스 대표 임경용은 언젠가 민구홍과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민구홍이 오직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편집한 결과물 또는 그를 위한 편집 지침인지 모른다.”

2024년 현재 민구홍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안그라픽스에서 2025년에 공개될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통합 웹사이트 디렉팅을 비롯해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금요일은 「새로운 질서」를 통해 자신만큼 웹을 사랑하는 친구들과 만난다. 미디어버스에서 곧 출간될 『새로운 질서』 확장판, 폰트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사이러스 하이스미스(Cyrus Highsmith)와 함께 한글 그림책 작업에도 열심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여전히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2025년이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어느덧 설립 10주년을 맞이한다. 그리고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회사 소개」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추가될 예정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월간 『디자인』에 회사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는 기생 지면을 기획하지 않습니다.”